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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페라사 최초의 공연

한반도에서 최초로 오페라가 공연된 날은 언제일까요?
1937년 5월 부민관에서의 '나비부인'이었습니다.
3년 뒤인 1940년에 같은 장소에서 오페라 '가르멘'이 공연되었는데 일제강점기였던 시절 공연인 만큼 이 공연들은 일본인들에 의해 주도된 것이었습니다.
 
광복 이후, 자유를 찾은 음악가들은 성악가이지 작곡가인 현제명을 주축으로 하여 1945년 '고려교향악협회'를 창단하여 다양한 음악 운동을 펼칩니다.
'순수음악을 통해 음악계를 발전시키자'라는 그들의 모토는 혼란했던 국내 상황으로 오래 가지 못한 채 1948년에 해단하게 됩니다.
하지만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들의 걸음은 국내 음악 문화의 터전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럼 한국인이 주축이 되어 펼친 최초의 오페라는 어떤 공연이었을까요?
한국 오페라사에서 최초의 공연은 광북 후인 1948년, 조선 오페라협회가 무대에 올린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입니다.
당시 의사이자 성악가였던 테너 이인선은 병원 수익금을 모두 오페라 활성화 운동에 쏟아부어 '조선오페라협회'를 만들었으며 1948년 1월 16일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이라 할 수 있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무대에 올리게 됩니다.
 
1950년에 들어서 드디어 한국어로 창작된 한국오페라가 탄생하게 되는데 대한민국 최초의 창작오페라인 현제명 작곡 이서구 대본의 '춘향전'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 공연은 대중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었지만 불과 한 달 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계속 무대에 올리기 어려운 상황에 놓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계속 되던 이듬해 1951년 7월 춘향전은 부산과 대구에서 재연되었고 국내에 오페라 인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같은 해인 1951년 10월 부단에서는 두 전째 창작오페라인 '콩쥐밭쥐'가 초연됩니다.
휴전 이후 1954년 11월 , 당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학장으로 재직 중이던 현제명 작곡가가 주도하여 한국 세 번째 창작오페라인 '왕자호동'이 제작 공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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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오페라 '왕자호동'

왕자호동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기록된 설화를 바탕으로 하는 '자명고'를 둘러싸고 있는 호동 왕자와 낙랑공주의 비극적인 사랑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라는 제목으로 더 알려져 있으며 고구려 왕자인 호동과 낙랑국의 공주는 혼인으로 맺어지지만, 호동을 진심으로 사랑한 낙랑공주와는 달리 호동왕자는 자신을 위해 공주를 이용합니다.
 
당시 낙랑국에는 적이 침입해오면 저절로 소리를 내어 알리는 '자명고'라는 전설적인 북이 있었는데, 호동은 낙랑공주를 이용하여 자명고를 찢게 하고 낙랑을 습격하여 정복합니다.
오페라 왕자호동은 1954년 초연 이후 같은 소재의 다른 작품으로 다수 창작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장일남 작곡 '왕자호동', 김달성의 오페라 '자명고', 임성남 안무 창작발레 '왕자호동'등이 있습니다.
 
2019년 연세대 박성원 교수의 총기획으로 공연된 '故 현제명 작곡가 음악의 밤'에서 현제명 오페라 왕자호동의 악보다 복원되었습니다.
위 프로그램 자료는 작곡가 김희조 선생님이 보관하던 자료를 그의 아들인 지휘자 김덕기 교수가 기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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