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현대 사회에서 자동차는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소비자를 유혹하는 자동차 회사의 신모델 경쟁이 뜨거운데요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등록되는 자동차 대수는 약 40~50만 대 전후입니다.

수입차 역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달린 자동차라는 포스팅 내용으로 가볍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자동차

1955년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 최초의 자동차가 출시되었습니다.

바로 '시발' 자동차인데요 '시발'은 자동차 생산의 시작이라는 의미입니다.

시발은 지프형 6인승으로 배기량 2195cc에 최고 시속 80km로 달렸으며 큰 엔진을 달기는 했지만 그다지 빠르지는 않았습니다.

시발은 서울에서 자동차 정비업을 하던 국제 차량 제작의 창업자인 최무성, 혜성, 순성 등 3형제에 의해 개발되어 1955년 8월부터 1963년 5월까지 생산되었습니다.

시발은 수제 승용차였으며 미군으로부터 불하받은 지프 엔진과 변속기에 드럼통을 두들겨 펴서 만든 차체를 조립하는 식이었습니다.

 

주요 부품을 미국 차량에서 가져왔지만 국산차 원조로 보는 이유가 있는데요 실린더 헤드 등 엔진 부품을 한국 기술자가 공작기계로 깎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국산화율이 약 50% 정도 되었으며 이런 제조 방식 때문에 시발차 한 대를 만드는 데 약 4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시발은 1955년 10월에 열린 광복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서 최우수 상품과 대통령상을 차지하면서 이목을 끌기 시작했는데 시발의 인기는 감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처음엔 8만 환 정도 하던 차량 가격이 1년 뒤에는 택시회사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30만 환대로 치솟았으며 선금을 받고 주문을 받은 선약금만도 1억 환이 넘었습니다.

 

심지어 프리미엄을 붙여 팔려고 부유층 부녀들 사이에는 '시발계'까지 등장했는데 1957년에는 9인승 '시발 세단'도 출시가 되었습니다.

6 기통 엔진을 얹은 정원 9인승 차로 가격은 대당 270만 원 정도였으며 이처럼 시발이 인기를 끌자 버스, 트럭, 트랙터 제작에도 손을 뻗었습니다.

'시발택시'는 전국을 누비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중고차 조립 수준에도 못 미치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는데 정부 보조금이 끊기고 일본산 승용차 수입이 허용되면서 시발은 추락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결국 닛산의 블루버스가 '새나라 자동차'라는 이름으로 수입이 되면서 단종이 되었습니다.

시발은 회사가 문을 닫을 때까지 약 3000여 대가량 팔렸다고 합니다.

반응형

정주영 회장의 포니 1

우리가 만든 고유의 모델이 등장하기까지는 10년의 세월이 더 걸렸습니다.

1976년 국산 모델 1호인 '포니 1'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전까지 신진자동차 등에서 생산한 블루버드, 코로나, 크라운, 코티나 등은 외국 모델을 국내에서 조립한 것이었습니다.

포니의 개발 이면에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불같은 의지가 있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1974년 국산차를 만들어 수출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선진국에서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2만여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종합 기계 산업인 자동차를 후진국인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생산하겠다고 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보란 듯이 포니(1300cc급)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포니의 개발로 한국은 세계에서 열여섯 번째, 아시아에 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고유 모델을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또 포니는 국산 1호 수출차로도 이름을 올렸는데 판매 첫해에 1만 726대(대당 227만여 원)가 팔려나가 국내 시장의 43%가량을 휩쓸고, 6월에는 에콰도르에 6대를 수출했습니다.

 

이렇게 불을 지핀 자동차 산업은 지속적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면서 1996년 사상 처음으로 수출 실적 100만 대를 돌파했으며 포니를 성공시킨 현대차는 2004년 7월 누적 수출 대수 1000만 대 고지를 넘어섰습니다.

포니는 2009년 9월 디자인 전문가 대상 설문 조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한국 디자인으로 선정되었으며 날렵하고 모던한 스타일로 한국 상품 디자인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때 '포니차'와 '카폰' 값이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요?

1984년 5월 아날로그 방식의 차량용 이동전화(일명 카폰)가 상용화되기 시작했는데 당시 단말기 가격은 대당 약 300만 원으로 여기에 설비비, 채권 등을 합하면 카폰 값은 총 410만 원에 달했습니다.

당시 '포니 2'가격이 이와 비슷한 400만 원대라고 하니 어쨌든 포니는 한동안 국내 자동차의 대명사 브랜드로 위세를 떨치며 우리나라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선도했습니다.

반응형

인포스토리

트렌디한 최신정보, 유용한정보, 생활정보를 제공하는 인포스토리 입니다.